언론보도

[리뷰] "당신은 부양할 수 있습니까?"

  • 게시일13-04-0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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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부양의무제 다룬 작품들
부양의무제의 가족 파괴 적나라하게 보여줘
2013.04.06 12:55 입력

▲김춘배가 장애가 있는 아들의 수급권을 위해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서에서 자신의 인적사항을 지우는 모습.

4월 3일부터 6일까지 열린 1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는 부양의무제를 다룬 작품 두 편이 상영됐다. ‘2010년, 서울’(연출 김민철)과 ‘당신은 부양할 수 있습니까?’(연출 장호경)이다.

‘2010년, 서울’은 장애가 있는 아들의 수급권을 위해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실제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버지 김춘배가 아들 김민준을 등에 업고 응급실로 급히 달려가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김춘배는 입원 서류에 보호자 인적사항을 하나씩 적어나가다가 직업란에 아무것도 적지 못한다. 그는 직업이 없다.

그다음 장면은 주민센터에서 번호표를 뽑았지만, 사회복지담당공무원과 상담은 하지 않고 하염없이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다. 사회복지담당공무원도 그런 그를 모른 척한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주민센터를 방문해 자신의 가족이 수급을 받을 수 있는지, 아들이 장애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문의했다. 그러나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은 부양의무자인 그가 노동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이 할 수 있는 답은 정해져 있다. 그의 역할은 경직된 규칙의 기능적 적용이기 때문이다.

주민센터에서 김춘배는 수급 신청을 하러 온 젊은 남자에게 자신의 대기표를 건네준다. 젊은 남자 역시 ‘젊다는 이유(노동능력이 있다)’로 수급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김춘배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젊은 남자가 “한 달에 이삼일밖에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왜 수급 자격이 없느냐?”라고 항변하는 목소리가 주민센터에 공허한 메아리처럼 울린다. 그러나 주민센터에 앉아 있는 그 누구도 젊은 남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 안만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 젊은 남자가 수급 신청을 거절당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김춘배.

이후 김춘배는 간신히 서적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옮기는 일자리를 얻는다. 3개월 계약직이지만 그는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한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해고된다. 신원을 조회하니 전과가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소주와 종이컵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아들이 잠든 단칸방에 들어온 그는 소주를 마신 뒤 비닐봉지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운다. 그 모습은 아들에게 울음소리를 들키지 않으려는 행동으로 보이기도 하고 공기를 차단해 목숨을 끊으려는 행동으로도 보인다. 그러다가 아들이 내는 신음소리에 놀라 급히 비닐봉지를 벗고 아들을 살피던 그는 결심한다.

김춘배는 주민센터를 찾아가 부양의무자가 없으면 아들이 수급비와 장애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 재차 확인하고는 제출 서류에 보호자 란에 자신의 이름 대신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의 이름을 적는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아들이 한쪽 팔로 자전거를 타고 놀던 강변가 철봉에 목을 매단다.

그날 뒤늦게 일어난 아들은 아버지가 없는 상황이 익숙한지 잠자리를 정리하고 아버지가 사온 햄버거를 허겁지겁 먹는다. 텔레비전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가 나오지만 아들은 무심코 흘려보낸다. 방에는 김춘배 씨가 작성한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서류가 담긴 종이 봉투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마지막 장면은 뒤늦게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이 사색이 된 얼굴로 김춘배 씨의 단칸방을 찾아 가정방문을 하려는 것으로 끝난다.

▲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단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옥란 열사의 모습.

1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획작인 ‘당신은 부양할 수 있습니까?’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수급비 반납 투쟁을 했던 최옥란 열사가 세상을 떠난 이후 십여 년이 지났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뇌성마비 1급 중증장애인 부부는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는 자신의 부모를 이혼시키는 방법으로 수급을 얻는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혼인 신고를 하지 못한다. 남편이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70여만 원의 활동비를 받고 있기에, 혼인 신고를 하는 순간 수급권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부부는 아이를 낳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부모가 ‘장난감 사줄 돈이라도 있느냐?’라며 만류하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부양의무제가 건재한 세상에서 자신들이 아이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어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곁에 있는 개 두 마리를 자식처럼 잘 키우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두 작품 모두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족의 가난을 또다시 가난한 가족에게 책임지게 함으로써 빈곤을 서로에게 옭아매게 하다가 결국 가족을 파괴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