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가위에 눌린’ 장애와 철거, 가장의 삼중고

  • 게시일13-04-0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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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 '가위에 눌린'
개발이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모습 담아
2013.04.04 19:14 입력
▲1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인 영화 '가위에 눌린'의 한 장면.
누군가 현관문을 거세게 두드린다. 아버지가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그의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린다. 눈동자에는 공포감이 서려 있지만 이 이상 방법이 없다. 손이 떨린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아버지는 뇌성마비장애인이다. 밖에서는 공사 소리가 들린다. 꿈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천장에 붙어 있는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다 편안한 얼굴로 다시 눈을 감는다.

종소리가 들린다.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미정은 허겁지겁 뛰어와 문을 닫고 가쁜 숨을 쉰다. 미정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을 축하하는 미정과 아버지는 환하게 웃는다.

영화 ‘가위에 눌린’(김진호 감독)은 말조차 할 수 없는 뇌성마비장애인 아버지와 고등학생인 딸 ‘미정’이 철거지역에 살면서 겪는 아픔을 담았다. 영화는 집을 철거하려는 사람들과 집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담아낸다.

영화에서는 대사가 몇 마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아버지와 미정의 눈빛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집주인이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없는 척하면 그냥 갈 줄 알았지? 내가 저번 주에 방 빼라고 말했잖아.”라며 사람들을 시켜 짐들을 빼기 시작한다. 미정은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하지만 집주인이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상자를 빼려고 하자 미정은 갑자기 돌변해 달려간다. 미정은 계속 소리를 지르지만 집주인은 미정의 허리춤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몸싸움을 벌이던 미정이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쓰러진다. 집주인과 사람들이 주춤 한다.

집 근처에서는 철거지역을 촬영하러 사진기자들이 언덕을 오른다.
▲영화 '가위에 눌린'의 한 장면.

“아저씨 나 아저씨 딸이랑 같은 반 친구잖아요. 우리 같은 처지라고 같이 불 때자고 했잖아요. 근데 왜 변하셨어요.” 다시 정신을 차린 미정이 소리치지만, 집주인은 사람들에게 다시 짐을 빼라고 한다. 집주인은 미정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얼른 짐 빼!”라고 소리친다. 집주인과 미정은 몸싸움을 벌이다 실수로 미정을 던져버렸다. 흔들어봤지만 미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꿈에서 깨고 다시 깨고 또 깨는 장면들이 나온다. 가위에 눌린 듯 꿈에서 깨도 그것조차 가위에 눌린 채 반복되는 꿈속의 꿈. 아버지는 다시 꿈에서 깬다. 종소리가 들린다. 미정은 허겁지겁 뛰어와 문을 닫고 가쁜 숨을 쉰다. 미정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다.

미정의 아버지는 집주인이 들이닥쳐 짐을 뺄 때도, 미정이 쓰러질 때도 그저 눈을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소리도 낼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아버지는 계속 꿈에서 깬다. 어떤 대책도 없이 무작정 재개발만을 강행하는 철거가 지속된다면 아버지는 아마 계속해서 꿈에서 깰 것이다.

사진기자들이 언덕을 오른다. 허물어지는 집 사진을 찍으며 “아직 집을 덜 부셔서 그림이 안 나오네. 위로 올라가면 뭔가 나올 것 같아.”라고 말한다. 위로 올라가면서 사진기자들은 부서진 대문 앞에서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앉아 있는 미정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셔터를 눌러댄다.
‘찰칵, 찰칵, 찰칵’ 동네 주민인 듯한 아주머니는 미정을 발견하고 “미정아 왜 그래 너 왜 그러니”라고 외치며 달려가지만, 한 사진기자는 “잠깐만요. 잠깐만.”이라며 아주머니를 잡고 놓지 않는다. 셔터 닫혔다 열리는 소리가 더 빠르게 들린다.

기자가 찍은 사진 밑에는 ‘투데이 뉴스 24’라는 로고가 박혀 있다. 미정은 사진기를 눈물 고인 눈으로 노려본다. 배경에는 “미정아 무슨 일이니. 머리에 피 나잖아”라고 외치는 아주머니의 소리가 깔린다.

집주인에게 머리를 다치고 피를 흘리며 대문에 앉아 있는 자신을 촬영하는 사진기자를 바라보는 그녀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알면서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미정은 느낀 것일까.
미정의 눈동자에는 철거민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철거지역에도 '미정'이라는 이름으로 어쩌면 정말 미정(未定)의 사람들이 부서지는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온 힘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미정은 대변한다.

영화는 그런 사람들의 상반된 의견에 추를 기울여준다. 물론 권력과 자본을 가진 정부와 기업에 철거민들은 당연히 질 수밖에 없지만, 집주인이 쳐들어오는 소리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 옆으로 숨어버린 미정의 눈을 그들은 무시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장애인이라는 멍에와 한 집안의 가장으로, 개발지역의 철거민으로 삼중고를 겪는 아버지에게는 개발이 사람을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닌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모습을 영화는 절절히 담아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계속해서 반복되는 꿈처럼.
▲영화 '가위에 눌린'의 한 장면.


조은별 기자 sstar0121@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