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상상하여 무언가를 시작하는 곳, 카페 이메진

  • 게시일14-04-0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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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 '카페 이메진'
운전면허, 연애, 사랑을 상상하는 지적장애여성의 하루
2014.03.28 17:54 입력
올해 12회를 맞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4월 8일부터 사흘간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열립니다. 올해 영화제는 개막작 '카페 이메진' 등 총 16편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비마이너는 올해 상영작 중 세 작품의 내용을 소개합니다._편집자 주
▲1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 '카페 이메진'의 한 장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월급날은, 그러니깐 무언가를 상상하게 되는 날이다. 한 달 동안 혹은 그보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계획했던 그 무엇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나를 위해 혹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그 누구를 위해.

 

나주와 연주에게도 이날은 그런 날이다. 여느 날과 같은 아침이지만 월급날이기에 어제와 조금 다른 날이기도 하다.

 

나주 : 월급 타면 뭐할 거야?
연주 : 전동자전거를 살까, 운전면허를 딸까 고민 중이야.

 

커피 기기를 켜고 접시를 닦고 쿠키를 굽고 매장을 청소하며 카페 오픈 준비를 한다. 카페의 '클로즈(CLOSE)' 팻말이 '오픈(OPEN)'으로 바뀌면 스무 살 나주와 서른한 살 연주의 하루가 시작된다.

 

손님이 들어온다.

 

“카라멜 마끼아또 따뜻한 걸로 한 잔 주세요.”
“카… 뭐라고 하셨죠?”
“카라멜 마끼아또요.”

 
나주와 연주는 지적장애여성이다. 온통 영어로 된 커피 이름들이 복잡하고 어렵다. 하지만 커피 내리는 일은 즐겁다. 카페에 오고 가는 손님들 바라보는 일도 제법 흥미롭다.

 

그렇게 손님들의 이야기에 귀가 예민해지고 그들이 내뱉는 일상이 종종 부럽다. 연인과 통화하며 영화 약속을 하고 지난번에 갔던 파스타 집에 가자고 약속하는 그 일상 말이다.

 

“나도 연애하고 싶어.”


부러움 섞인 눈빛으로 연주는 말한다.

 

어제 나갔던 소개팅은 탐탁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보다 열다섯 살 많은 마흔여섯의 남자였다. 연주는 집안일 잘 도와주는 이가 이상형이라고 말했고, 상대는 집안일은 남자가 할 일이 아니며 여자의 몫이라 했다. “그래서 남자가 결혼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쨍쨍했던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여전히 연주 귓가에 남아 있다.

 

오늘따라 눈이 자꾸 바깥 세계를 향한다. 이상하게 오늘은 평소 갖고 싶었던 것들이 유독 더 잘 들어온다. 넓은 유리창 너머 신 나게 달리는 자동차들을 바라본다. 저렇게 많은 차 중에 왜 내 차는 없는 걸까. 운전면허를 따고 싶지만 자신이 사는 익산엔 지적장애인이 운전을 배울 수 있는 면허학원은 없단다. 배우려면 서울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무엇하나 쉬운 게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같이 복지관에 있었던 친구는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진다. 친구가 찾아와 나주에게 하소연한다.

 

“집에 돈이 없다고 부모님이 싸우셨어. 얼른 취직해서 돈 벌어야 하는데….”

 

부모님 싸움의 이유가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자책하게 된다. 나주도 그 마음 모르는 게 아니어서 속상하다. 그런데 속상함에 푹 젖기도 전에 카페 사장님이 친구와 노닥거리지 말고 얼른 들어가라고 힐난한다.

 

▲1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 '카페 이메진'의 한 장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매니저에게 혼나고 사장에게 혼나고, 그렇게 퇴근 시간은 지연된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퇴근 시간은 오고야 만다.

 

그렇게 카페 이메진(Cafe Imagine) 문을 나서는 순간, 나주는 기다리고 있던 남자친구와 엄마 선물을 사러 가고, 부러움 섞인 눈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연주는 그 마음 꼴깍 삼키며 말한다.

 

“전동자전거나 보러 가야겠다.”

 

 

이번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인 영화 ‘카페 이메진’은 배우로 나선 이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능숙한 연기가 아닌 대본을 읽는 듯한 서투른 연기마저 묘한 재미로 작용한다. 영화는 익산장애인종합사회복지관과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가 함께 주최한 장애인성인미디어교육 8기 ‘미디어와 함께 룰루랄라’를 통해 제작되었다. 

 

▲1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 '카페 이메진'의 한 장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